저술

다산 저작집

여유당집 與猶堂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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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약용이 자신의 저술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필사본에 붙인 서명
  • 정약용의 저술은 대부분 유배지인 강진(康津)에서 이루어졌다. 해배되어 고향에 돌아온 정약용은 그동안 자신의 모든 저술을 정리하여 ‘여유당집’이라 하였다. 여유당은 1800년에 정약용이 마현(馬峴) 고향집 서재에 건 당호(堂號)이다.(→여유당기) 『여유당집』은 정약용 사후 일제강점기에 『여유당전서』로 다시 편집되어 간행되었다.

열수전서 冽水全書

  • 정약용 사후 자손들이 정약용의 저술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붙인 서명
  • 정약용은 자신의 모든 저술을 모아 『여유당집(與猶堂集)』이란 제목으로 정리하려 했지만 마치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이후 정약용의 현손(玄孫) 정규영(丁奎英, 1872~1927)은 정약용의 저술 전체의 목록을 ‘열수전서’라는 제목하에 정리하였다. 그러나 『열수전서』는 총목록은 전하지만, 실제 ‘열수전서’라는 표기가 달린 저술은 일부만이 전한다. 따라서 『열수전서』 또한 미완의 정리였다고 할 수 있다.

여유당전서 與猶堂全書

  • 신조선사(新朝鮮社)에서 1934년부터 1938년까지 총 76책(전154권)으로 간행한 정약용의 문집
  • 신연활자(新鉛活字: 高宗 20年(1883) 統理衙門에 博文局을 설치하고 일본에서 도입한 활자)로 인쇄한 활자본으로 정약용의 외현손(外玄孫) 김성진(金誠鎭, 1874~1946)이 편집하고, 정인보(鄭寅普, 1893~1950, 호:爲堂)와 안재홍(安在鴻, 1891~1965)이 교열을 보았다.

여유당전서보유 與猶堂全書補遺

  •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 수록되지 않은 정약용의 글을 정리하여 수록한 책
  • 경인문화사(景仁文化社)에서 1973~1975년에 5책으로 간행하였으며, 2012년에는 다산학술문화재단(茶山學術文化財團)에서 『여유당전서보유』를 『정본(定本) 여유당전서』의 일부로 포함시켜 간행하였다.

정본 여유당전서 定本 與猶堂全書

  • 다산학술문화재단이 신조선사 간행 『여유당전서』를 저본으로 하여 표점 및 교감을 더하고, 여기에 『여유당전서』에 수록되지 않은 『보유(補遺)』3책을 편입하여 2012년 총 37책으로 출간한 정약용의 문집
  • 다산학술문화재단은 2001년부터 『여유당전서』 정본화 사업을 기획ㆍ착수하였고, 8개년(2004~2012)에 걸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지원과 민간단체의 일부 지원을 받아 2012년 2월 연구를 완료하였다. 또한 다산학술문화재단은 2009년부터 민간의 지원을 받아 출간준비에 착수하였으며, 2012년 다산선생 탄신 250주년에 즈음하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진흥사업단의 출간지원을 받아 『정본 여유당전서』를 완간하게 되었다. 이 사업은 출간에 이르기까지 다산학 및 한국학 연구자 80여명이 참여한 사업으로 정부ㆍ민간ㆍ학계ㆍ출판계의 공동 협력을 통해 현대화된 원문 텍스트를 이루어낼 수 있었다.

여유당집

열수전서 冽水全書

여유당전서 與猶堂全書

여유당전서보유 與猶堂全書補遺

정본 여유당전서 定本 與猶堂全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