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수경 大東水經

정약용이 1814년(순조 14)에 임진강 이북 수계(水系)를 정리하여 완성한 지리서.

정약용은 조선과 중국의 각종 문헌 및 지도를 바탕으로 중부 이북 지방의 주요 하천에 관련된 자연지리와 인문지리 기록들을 종합하였다. 대상은 녹수(淥水 = 압록강)와 이에 합류되는 독로수(禿魯水)ㆍ염난수(鹽難水)ㆍ동수(潼水)ㆍ애하수(靉河水)ㆍ고진수(古津水), 그리고 만수(滿水 = 두만강), 살수(薩水 = 청천강), 정수(淀水 = 대령강), 패수(浿水 = 대동강), 강선수(降仙水 = 비류강), 능수(㴰水 = 능성강), 저수(瀦水 = 예성강), 대수(帶水 = 임진강)와 이에 따르는 지류 및 하천이 통과하는 하안(河岸) 지역이었다.

정약용은 조선과 중국의 각종 문헌 및 지도를 바탕으로 중부 이북 지방의 주요 하천에 관련된 기록들을 종합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부가하였다. 이 책에서는 하천 이름에 모두 ‘수(水)’를 부여하여 독자적인 하천 체계를 제시하였다. ≪사암선생연보(俟菴先生年譜)≫에 의하면 1814년(순조 14) 겨울에 집필하여 초고본을 만들었으며, 제자인 이청(李𤲟 = 李鶴來, 1792~1861, 호:靑田)이 집주 작업을 진행하였다. 1822년 작성한 <자찬묘지명>에 “대동수경(大東水經) 2권”으로 적혀 있어 그 이후 집주 작업이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약용이 수경을 편찬할 필요성을 절감한 것은 이보다 훨씬 전이었는데, 그것은 1789년(정조 13) <지리책>에서 지리의 중요성과 지리책의 필요성을 언급한 다음 상흠(桑欽, ?~?, 전한(前漢), 자:君明)의 ≪수경(水經)≫과 역도원(酈道元, ?~527, 북위(北魏), 자:善長)의 ≪수경주(水經注)≫를 모방하여 ≪동국수경(東國水經)≫을 편찬할 것을 건의하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다. 단국대학교 도서관 연민문고 소장본과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본에서 표제를 ≪조선수경(朝鮮水經)≫이라고 한 것은 일제강점기에 필사하였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정약용이 1814년(순조 14) 겨울 초고본 2권을 완성한 다음 1822년 이후 이청이 주석을 추가하여 수정본 13권 4책을 만들었다. 필사본으로 전하던 정약용의 저작을 1935~1939년 정인보(鄭寅普, 1893~1950, 호:爲堂)ㆍ안재홍(安在鴻, 1891~1965)이 교감하여 ≪여유당전서≫를 간행하면서 수정본 ≪대동수경≫을 제70책<제6집 제5권~제8권>에 수록하였다. 1970년 경인문화사에서 영인ㆍ간행한 ≪여유당전서≫에는 제6책(전6책)에, 1985년에 여강출판사에서 간행된 ≪여유당전서≫에서는 19책(전21책)에 수록되었다. 번역으로는 북한 과학원 고전연구소 고전연구실(강서영, 김승필, 리윤수, 리종필, 서영철, 조규형 공역)에서 1962년 번역ㆍ간행한 것이 있으며, 이를 1992년 여강출판사에서 영인ㆍ간행하였고, 2001년 판권 계약에 따라 윤문ㆍ교열하여 간행하였다. 단국대 소장본으로 낙질본 ≪조선수경≫1책이 있는데, 규장각본에서 빠진 내용도 수록된 부분이 있어 참조가 된다.

≪여유당전서≫에 수록된 ≪대동수경≫은 제1권에 <녹수(1)(淥水一)>ㆍ<녹수(2)(淥水二)>, 제2권에 <녹수(3)(淥水三)>ㆍ<만수(1)(滿水一)>ㆍ<만수(2)(滿水二)>, 제3권에 <살수(薩水)>ㆍ<정수(淀水)>ㆍ<패수(1)(浿水一)>ㆍ<패수(2)(浿水二)>, 제4권에 <패수(3)(浿水三)>ㆍ<강선수(降仙水)>ㆍ<능수(氵+能 水)>ㆍ<저수(瀦水)>ㆍ<대수(帶水)>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의 북부지방을 흐르는 하천의 발원처에서부터 입해처에 이르기까지의 경로, 하천의 원류와 지류 및 그에 합류되는 하천의 명칭, 경유 지역의 연혁에서부터 사건ㆍ고적 등을 수집한 다음 이에 대한 역사지리 고증을 첨부하였다. 서술은 주요 하천의 경로를 ‘강(綱)’으로 내걸고 지류나 하천 유역의 관련 사안과 자료는 ‘목(目)’으로 제시한 다음 정약용 혹은 이청의 논평을 수록하는 형식을 취하였다. 관련 자료에는 중국, 일본 및 한국의 150여 종의 저술ㆍ저자ㆍ지도를 인용하고 있으며, 논평의 경우 “안(案)”, “선생운(先生云)”, “청안(𤲟案)”으로 구분되어 있다.

18세기 후반 신경준(申景濬, 1712~1781)이 ≪산수고(山水考)≫를 저술하면서 전국 12개 주요 하천과 그 발원지, 경유지, 합류점 등을 기록하였으나 고증적인 연구로 진전되지 못하고 관련 내용을 서술하는 데 그쳤다. 정약용은 ≪대동수경≫에서 논란이 되는 하천에 대해 각종 문헌을 비교하여 검토한 다음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여 고증적 지리 연구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였다. 이러한 연구가 가능하였던 것은 17~18세기 역사지리학이 발전하면서 많은 저술과 자료가 집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천을 다루면서도 고증지리에 중점을 두어 하천의 기능이나 지역 변화와 같은 자연 지리적 측면은 부족한 점, 하천 이름에 모두 ‘수(水)’를 부여하여 전래의 ‘강(江)’이라는 옛 명칭을 잃어버리게 된 점 등에서는 한계로 지적된다.

(박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