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자잠 中庸自箴

정약용이 자신의 마음을 닦고 스스로를 경계하기 위해 저술한 ≪중용(中庸)≫에 대한 해석서.

≪중용자잠≫은 경학에 대한 정약용의 기타 주석서와는 달리 고증에 치중하기 보다는 ≪중용≫ 해석을 통해 정약용 스스로를 수양하기 위한 목적으로 저술되었다. 정약용은 ≪중용자잠≫에서 자신의 깊은 내면의 사상과 ≪중용≫에 대한 원숙하고 체계적인 이해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중용자잠≫은 정약용이 53세 되던 1814년에 저술되었다. 이는 정약용이 23세 때 정조(正祖, 재위 1776.3~1800.6)가 내린 <중용조문>에 답하기 위해 이벽(李蘗, 1754~1786, 호:曠菴)과 상의를 하던 해로부터 30년이 지나서 쓰여졌다. 즉 정약용은 경학에 대한 폭넓은 연구를 통해 ≪중용≫에 대한 깊은 독자적 이해에 도달한 후 ≪중용자잠≫을 저술하였다.

활자본은 1936년에 신조선사(新朝鮮社)에서 간행한 ≪여유당전서≫ 제2집, 경집 제3권에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1책 3권의 필사본이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정약용에 따르면 서한(西漢) 이래로 ≪중용≫의 의의를 강조했던 학자들이 있었지만, ≪예기≫에 속해 있던 ≪중용≫의 의의를 명확히 드러낸 저술은 주희(朱熹, 1130~1200, 호:晦庵)의 ≪중용장구≫이었으며, ≪중용≫을 별도의 하나의 서적으로 독립시킨 것은 원(元) 인종(仁宗, 재위 1286~1320) 때부터라고 설명하였다. 주희는 ≪중용장구≫에서 ≪중용≫을 33장으로 나누어 해석하였는데 정약용의 ≪중용자잠≫은 59절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중용≫의 주요 구절에 대해 구절명을 쓰고, 이어서 ‘잠하여 가로되(箴曰)’라고 하여 자신의 해석과 생각을 비교적 자유롭게 기술하였다.

≪중용자잠≫의 천관의 특성

≪중용자잠≫에는 정약용의 천관이 잘 나타나 있다. ≪중용자잠≫에서 천은 상제 즉 인격적 천의 관념이 강하다. “본성을 따르는 것[率性]을 도(道)라고 한다.[率性之謂道.]”의 ‘본성을 따르는 것’을 천명을 따르는 것으로 해석했다. 하늘은 인간에게 생명을 줄 때 이 명령[命]을 내려 주었고, 살아있는 날 동안에는 이 하늘의 명령이 계속 이어진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천명 즉 천의 목소리는 곧 우리 인간의 도심(道心)에 붙어 있다고 한다. 즉 도심의 소리가 곧 천명이었다. 그래서 인간은 마음속에서 언제나 상제와 마주하고 대화할 수 있다고 이해하였다. ≪중용≫ 1장에 나오는 “군자는 그 보이지는 않는 것을 경계하고 조심하며, 그 듣지 못하는 것을 조심하고 두려워한다.[君子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에서 ‘그 보지 못하는 것[其所不睹]’는 곧 하늘의 몸체이고, ‘그 듣지 못하는 바[其所不聞]’는 곧 하늘의 소리라고 정약용은 해석하였다. 그리고 계신공구(戒愼恐懼)의 대상은 인격이 없는 리(理)가 아니라, 영명하여서 인간의 선악을 인식하고 심판할 수 있는 인격적 하늘 즉 상제천(上帝天)이라고 이해하였다. ≪중용자잠≫의 중요한 특성은 천관이 성리학과 달리 매우 인격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정약용은 미발론(未發論)에 있어서도 미발이란 희로애락의 미발이지, 심지사려(心知思慮)의 미발이 아님을 강조하였다. 미발시에도 조심스레 상제를 밝게 섬기고 항상 신명이 옥루(屋漏)에서도 밝게 비추는 것과 같이 계신(戒愼)하고 공구(恐懼)해야 한다고 정약용은 주장하였다.

“성(性)”과 “도(道)” 개념에 대한 이해

정약용은 ≪중용자잠≫에서 고경(古經)에 나오는 성자(性字)의 용례를 분석함으로써 성이란 기호(嗜好)를 뜻한다고 해석하였다.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의 ‘성’ 역시 기호를 뜻한다고 이해하였다. 정약용은 하늘은 사람에게 선을 즐기고 악을 미워하며 덕을 좋아하고 더러운 짓을 부끄러워하는 본성을 주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러한 본성을 따라서 나아가는 것이 ‘도(道)’라고 정의하였다.

“용(庸)” 개념의 해석

주희는 중용(中庸)의 ‘용’을 ‘평상지리(平常之理)’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정약용은 성인이 ‘평상지리’를 지극한 덕으로 부르지는 않는다고 부정했다. 대신에 ≪서경(書經)≫, <고요모(皐陶謨)>에서 고요가 9개 덕목을 말하고 나서 끝머리에서 “창궐유상길재(彰厥有常吉哉: 9덕을 밝혀서 드러내되 항상 유지하면 길하리라.)”라고 하는 구절을 중시했다. 여기서 9덕은 중을 가리키고, “창궐유상길재”의 ‘유상(有常)’ 즉 ‘항상 유지함’이 용의 의미라고 해석했다. 아무리 좋은 중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지속적으로 꾸준히 지키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중용≫의 근본원리에 대한 해석

≪대학≫은 ‘성의’ 로써 수신의 근본을 삼고, ≪중용≫은 '지천(知天)' 으로써 수신의 근본을 삼지만 그 뜻은 하나라고 정약용은 인식하였다. 왜냐하면 ‘하늘을 아는 자(知天者)' 는 신독(愼獨)을 하고 신독을 하면 곧 성(誠)하기 때문이다. 정약용은 또한 지천(知天)이 성신(誠身)의 근본이고, 성(誠)이 만덕의 근본이라고 하여 ‘성(誠)’을 강조했다. 천지만물의 이치가 모두 ‘성’이라는 글자로서 근본을 삼고, 온갖 물줄기가 ‘성’이라는 글자로서 원두를 삼기 때문에 “불성무물(不誠無物)”이라고 하며, 성은 하늘의 도라고 해석하였다. 이와 같이 ≪중용자잠≫은 ≪중용≫을 ≪대학≫과 상호 연관시켜 통일적으로 해석하였다. 그리고 인격적 천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더불어 신독의 수양론과 성의 덕을 가장 근본적인 것으로 이해하였다.

≪중용자잠≫은 정약용이 ≪중용≫을 내밀한 실존적 수양의 관점에서 해독한 것으로써 그의 내면의 신앙세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중용≫에 대한 정약용의 창조적이고 독자적인 이해와 해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장승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