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학편 兒學編
정약용이 강진(康津)에서 아동들의 한자 학습을 위하여 편찬한 한자 학습서.
정약용의 현손(玄孫) 정규영(丁奎英, 1872~1927)이 편찬한 ≪사암선생연보(俟菴先生年譜)≫(1921년)에는“순조 4년 갑자년(1804), 공이 43세 되던 봄 <아학편훈의>를 완성하셨다.[純祖四年甲子, 公四十三歲春, 兒學編訓義成. (凡二千文)]”라고 기재되어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아학편훈의(兒學編訓義)>가 1804년 봄에 완성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로 지금까지 확인된 <아학편>의 필사본 이본들은 모두 권수제나 표지 서명이 “아학편(兒學編)”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아학편>이 정확하게 언제 편찬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정약용이 강진에 있었을 때 편찬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학편>의 이본(異本)들은 현재도 많이 남아 있다. 이들은 대부분이 후대에 다시 필사된 것으로 각각이 표기법에서뿐만 아니라 한자의 음훈(音訓)에서도 부분적으로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현전하는 <아학편>의 이본들 중 대표적인 것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여유당전서보유(與猶堂全書補遺)≫의 <아학편>은 장서각 소장본을 영인하여 실은 것이다.
강경훈 소장본은 상하 2권 1책의 필사본이다. 이 책의 하권 맨 뒷장에 “계유년(1813년 또는 1873년) 석류 익던 여름 예당거사가 철마산방에서 쓰다.[歲在癸酉榴夏, 芸堂居士書于鐵馬山房.]”라는 필사기가 있다. 권수제는 ‘아학편(兒學編)’이다. 5행 5자본으로 상권은 20장이고 하권은 21장이다. 상권의 마지막 한자 두 자 ‘금(琴)’과 ‘슬(瑟)’은 <아학편> 하권의 1장 1행에 있으며 <아학편> 하권은 1장 2행부터 시작한다. 이 책의 크기는 21×29.7㎝이다. 현재 표지는 개장되어 있다. 강경훈본은 지금까지 필자가 확인한 것들 중 가장 시기가 앞서는 것으로 선본이다. 사란 안에 한자는 대자(大字)로 각 한자의 음과 훈은 가는 글씨로 적은 필사본이다. 글자가 잘 보이지 않는 부분들은 후대에 개칠한 곳도 있다. 강경훈본의 상권에는 서명인 ‘아학편’의 3 자를 제외하면 997자로 되어 있는데 이 책 상권의 난상에 ‘균(麕)’ <上 11a>, ‘낭(榔)’ <上 15b>, ‘체(篩) ‘ㅅ+아래아(ㆍ)’ <上 17a> 등 3 자가 적혀 있다. 실제로 강경훈 소장본의 난 위에 적혀 있는 이 한자들이 <아학편>의 다른 이본들에는 본문 한자에 포함되어 있다.
장서각 소장본은 상하 2권 1책의 필사본이다. 책의 크기는 28.5×46.8㎝이며 각 쪽의 글상자의 크기는 22.4×38.2㎝이다. 전체가 26장이고, 뒤에 백지 두장이 더 붙어 있다. 상권은 13장으로 서명 ‘아학편(兒學編)’ 3 자를 빼고 1,000자다. 상권 12장 앞면의 1행 글상자 위에 ‘미(弭)’가 적혀 있다. 이 글자는 다른 필사본들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장서각본은 5행 8자본으로, 하권의 원문 한자 제시 순서에서 강경훈본이나 규장각본과는 차이를 보인다. 이 책도 다른 이본들과 마찬가지로 세필로 칸을 구분하여 위쪽에는 대자로 한자를 쓰고 아래쪽 칸에는 작은 글씨로 한자의 음과 훈을 표기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자료에는 다른 이본들과는 달리 한자의 좌ㆍ우측에 또 다른 음훈을 하나 또는 두 개를 첨기하고 있다. 첨기된 한자의 음훈들은 대개는 다른 이본들에서 기본적인 음훈으로 제시한 것들이 많다.
규장각에는 <아학편>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고 2410-18이고, 다른 하나는 상, 하 2책본인데 상권 후반부터 한자의 음훈이 필사되지 않은 불완전한 것이다. 고 2410-18로 분류된 규장각 소장본은 표지가 남색 천으로 고급스럽게 장정되어 있다. 책 크기는 27.2×33.8㎝이다. 사주쌍변으로 상권 하권의 구분이 없는 1책이다. 4행 4자본이다. 상권에 실려 있는 유형자 ‘天地 父母’부터 ‘琴瑟’까지 1,000 자가 이 책에는 1장부터 32장 앞면 3행까지 있고, 바로 이어서 32장 앞면 4행부터 ‘인ㆍ의ㆍ예ㆍ지(仁義禮智)’가 이어져 상ㆍ하를 구분하지 않고 ‘공ㆍ맹ㆍ안ㆍ증(孔孟顔曾)’까지 무형자 1,000 자가 63장 뒷면 1행까지 적혀 있다.
지석영 편집본은 지석영(池錫永, 1855~1935)이 정약용의 <아학편>에 주석을 달고 한국어, 중국어, 영어, 일본어를 대조한 책으로 1908년(隆熙 2) 3월에 만들고 용산 인쇄국에서 인쇄하여 광학서포(廣學書舖)와 대동서시(大東書市)에서 간행한 책이다. 이 책은 1권 1책의 석판본(石版本)으로 국판 양장본이다. 이 책도 4행 4자본으로 규장각본과 같다. 정약용의 <아학편>을 바탕으로 그 당시 중국어와 일어, 영어 등에 능통한 전용규(?~?)로 하여금 한(漢)ㆍ일ㆍ영문의 주석을 붙이게 하여 석판으로 간행한 것이다. 본문에는 각 한자마다 우측에 국어 훈음과 한음(漢音), 좌측에 일어 훈음, 아래에 영어를 붙여 국어와 중국어, 일어, 영어를 대조하면서 배울 수 있도록 편집한 책이다. 특히 훈과 음은 당시의 한자음과 훈의 연구에 필요한 자료이다. 한자의 고저음을 표시하고 있어 더욱 유익하다.
앞에서 살펴본 강경훈 소장본이나 장서각 소장본, 규장각 소장본 등은 각각 필사된 시기에 따라 표기나 음과 훈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특히, 무형자 1,000 자가 실려 있는 하권은, 유형자를 싣고 있는 상권과는 달리 원문 한자의 제시 순서가 각 이본마다 차이를 보인다. 이 외에도 20세기 초반에 간행된 것으로 보이는 목판본 ≪명물소학(名物小學)≫이 있는데 이것은 바로 <아학편>을 목판으로 간행하면서 서명을 바꾼 것이다. 간기가 없어 정확한 출판지나 출판 사항 등을 알 수 없다.
<아학편>은, ≪천자문≫이 가지고 있는 단점을 극복하여 경험과 구체적인 대상물(유형자)을 실제적인 사물 인식의 바탕 위에서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편찬한 한자 학습서였다. 정약용은 아동의 인지능력을 사물이 가진 대립적 형식을 제시하는 방법을 통하여 극대화시킬 수 있다고 보고, 실질적으로 <아학편>을 편찬하면서 같은 류 안에서 제시하는 원문 한자들 사이에는 대립하는 구체물이나 개념들을 대립시키는 방식으로 한자를 배열하였다. 정약용의 이러한 편찬 태도는 그 당시 대표적인 한자 학습서인 ≪천자문≫이 글자가 체계적으로 배열되지 않아 초학자에게 학습의 단계성이나 난이도가 전적으로 무시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아학편>의 체제와 내용상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유형자와 무형자를 철저하게 구분하였다. 이것은 적어도 정약용의 <아학편>에서는 기존의 한자 학습서에서 채택한 내용적인 유별(類別) 분류 방식보다도 우선하는 것이다. 유형자와 무형자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은 ≪훈몽자회≫나 ≪신증유합≫ 등과는 차이가 있다.
둘째, 정약용의 유(類)나 족(族)의 개념은 기존의 한국의 한자 학습서에서 분류한 내용 중심적인 유별 분류와는 다른 것이다. 정약용은 경험할 수 있는 대상을 형(形)과 정(情)과 사(事)로 구분한 바 있었다. 이 중 형은 유형자로, 정과 사는 무형자에 속하는 것으로 파악한 것이 유별분류를 시도하고 있는 다른 한자 학습서와 다른 점이다. 바로 이 점이 내용적인 관점에서 유별분류를 하고 있는 ≪훈몽자회≫나 ≪신증유합≫ 등과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유(類)나 족(族)의 분류가 기존의 한자 학습서에서 분류한 유별와도 다른 것이다. ≪훈몽자회≫나 ≪신증유합≫ 등에서는 천문, 지리, 인륜 등으로 유별항목명(類別項目名)이 설정되어 있음에 비해 <아학편>에는 분류항목의 표시도 없다.
셋째, 정약용의 경우에는 유(類)별 분류나 음양의 대립적인 인식 태도도 인식 대상이 유형자인가 아니면 무형자인가를 먼저 구별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였다. 따라서 <아학편>의 상권에는 구체적인 명사 즉 인간관계나 자연계의 구체적인 대상을 가리키는 유형적인 사물이나 구체적인 지시어 등을 수록하였다. 하권에는 추상명사나 대명사, 형용사, 동사, 계절, 기구, 방위 개념 등 무형적인 개념어들을 수록하였다. 정약용이 <아학편>에서 한자를 먼저 유형자와 무형자로 구분하여 배열한 것은 아동들로 하여금 감각기관으로 경험ㆍ관찰할 수 있는 유형적 개념을 먼저 학습하게 한 다음, 학습자의 주관적 판단과 이해가 요구되는 개념을 학습시키고자 한 것이다. 이것은 앎이 실제와 명목이 합일하는 데에서 이루어진다는 정약용의 경험론적 교육철학을 반영한 것이다.
넷째, <아학편>의 원문 한자 편성에서 각 족(族: 부류) 안에서는 한자들을 서로 대립되거나 관련이 있는 것끼리 짝을 지어 제시하였다. 또, 같은 유별 분류 안에서는 한자의 조자(造字) 원리를 고려하여(한자의 부수 등을 고려하여) 한자를 체계적으로 익힐 수 있도록 편집하였다. 정약용의 이런 편집 태도는, 아동들이 맹목적인 구송(口誦)에 의한 한문 학습 방법을 지양하고 아동들로 하여금 감각 경험을 통하여 그들의 배움과 현상 세계가 분리되지 않고 일치시킬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런 원칙을 지켜 대립되는 개념이나 뜻을 지닐 수 있도록 한자를 배열했기 때문에 부분적으로는 문맥이나 구의(句義)가 살아나지 못한 것도 있다.
다섯째, <아학편>에 수록한 단어들은 다분히 인간 중심적이고 실생활과 관련된 것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의 배열 순서에 있어서도 다른 한자학습서와는 달리 인(人)과 관련된 것들을 가장 먼저 배열하였다.
<아학편>은 체제나 내용의 구성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편찬 의도와 목적에 있어서도 정약용의 실학적인 교육 사상과 방법론이 잘 반영되어 있는 한자 학습서이다.
(정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