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충 尹持忠
1759(영조 35) ~ 1791(정조 15).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
본관은 해남(海南). 세례명은 바오로. 자는 우용(禹用). 고종사촌 정약전(丁若銓, 1758~1816, 호:巽菴)ㆍ정약용 형제의 영향으로 천주 교리를 익힌 뒤 신자가 되었으며,
1791년의 진산사건(珍山事件)으로 체포되어 전주에서 군문효수형(軍門梟首刑)을 받았다.
윤지충은 정약전ㆍ정약용 형제와 내외종간으로, 1782년 가을에는 그들과 함께 서울 봉은사(奉恩寺)에서 경의과(經義科)를 준비하고, 다음해에는 함께 생원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윤지충이 천주교에 입교한 데는 정씨 형제들의 영향이 컸다.
윤지충은 전라도 진산에서 아버지 윤경(尹憬, ?~?)과 어머니 안동 권씨(安東權氏)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장성한 뒤 충주에 살던 연안 이씨(延安李氏) 이행덕(李行德, ?~?)의
딸과 혼인하였다. 1783년에 진사가 되었고, 고종사촌인 정약용 형제들과 교류하는 동안 그들의 영향으로 천주 교리를 배워 1787년경에 입교했으며, 이어 이종사촌
권상연(權尙然, 1751~1791)과 아우 윤지헌(尹持憲, 1764~1801) 등에게 교리를 전하였다.
1790년 북경 교회로부터 조상제사금지령이 전달되자 윤지충은 권상연과 의논한 끝에 신주를 소각하였다. 또 다음해 5월에는 어머니가 사망하자 유교식 제사를 거부하고 교회의 예법에 따라 장례를 치렀다.
이후 이에 대한 소문은 급속히 나갔으며, 윤지충과 권상연은 체포되어 전주로 압송된 뒤 12월 8일에 군문효수형을 받았다(진산사건). 이어 서울과 경기도에서는 신해옥사(辛亥獄事)가 발생하여 천주교
신자들이 체포되었고, 평택현감으로 있던 교회 창설자 이승훈(李承薰, 1756~1801, 호:蔓川)은 관직이 삭탈되었으며, 정약용도 반대파들로부터 공격을 받아야만 하였다.
윤지충이 옥중에서 작성한 공술기인 <죄인지충일기(罪人持忠日記)>가 당시의 신자들에게 필사되어 전해진 것은 분명하나 현존하지는 않는다.
윤지충은 한국 천주교회사는 물론 정약용 형제들과 천주교와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인물이다. 그가 순교한 자리에 있는 전동성당(殿洞聖堂: 현 전주시 완산구 전동 200-1)에서는
연례적으로 추모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로 2014년 시복(諡福)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