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사업

여유당전서 정본사업

재단은 2012년 다산 탄신 250주년이라는 뜻깊은 해를 맞이하여 총37책의 『정본 여유당전서』및 『《여유당전서》 미수록 다산 간찰집』(이하 『다산 간찰집』) 1책을 발간하였다. 『정본 여유당전서』는 신조본 《여유당전서》(154권 76책,1934~1938, 이하 ‘신조본’으로 약칭)를 저본으로 하여 표점 및 교감을 더하고, 여기에 《여유당전서》에 수록되지 않은 《여유당전서보유與猶堂全書補遺》를 정본으로 편입하여 총 37책으로 출간되었다.
1998년 말 다산학 연구지원을 목적으로 설립된 다산학술문화재단은 국내외 학술대회 개최, 학술지 『다산학』 발간, 다산학술상 시상 등으로 재단 활동의 기초를 다지게 됨에 따라, 2001년 9월 다산학계의 의견을 받아들여 새로운 학술사업으로 《여유당전서》 정본화 사업을 채택하게 되었다. 당초 재단 자체의 예산으로 기획 및 준비에 착수하였으나 재단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여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게 되었으며, 마침내 2004년 9월부터 한국학중앙연구원을 통하여 사업비 지원을 받게 되었고, 총 11년에 걸친 연구 끝에 정본사업을 대과大過없이 마무리하게 되었다.
《여유당전서》 정본사업은, 500만 자에 이르는 신조본의 원문을 전산 입력하여 디지털화 하고, 표점標點 작업을 통해 원문의 가독성을 높이며, 신조본이 지닌 오탈자 및 오류를 바로잡는 교감校勘 연구를 통하여 다산 저술의 원전에 가장 가까운 ‘정본定本’을 만드는 학술사업이다. 이러한 정본사업은 당시 학술계로서는 다분히 생소한 미개척의 분야였으므로 출발부터 많은 난관에 봉착하였으며 진행과정에서 적지않은 시행착오를 거듭하지 않을 수 없었다. 표준화 된 교감 및 표점 범례가 마련되지 않았고, 교감을 위한 대조 필사본을 준비하지 못하였으며, 또한 정본 연구에 참여할 전문 연구자와 연구비도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본 여유당전서』의 탄생에 대한 다산학계의 간절한 소망이 사업의 착수와 진행, 그리고 정본의 완성에 이르는 원동력이 되었다. 80여 명에 이르는 다산학 및 한국학 연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열정이 결집되고, 8개년(2004년~2012년)에 걸친 정부의 꾸준한 사업비 지원과 민간단체의 출연이 뒷받침되어 국제적 수준의 현대화된 원문 텍스트 『정본 여유당전서』 출간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정부·민간·학계·출판계가 힘을 모아 이루어 낸 성과로서 고전 자료를 현대화하고 학술적 기반을 구축하는 정본사업의 대표적인 전범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정본 출간에 더하여 국내외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데이터베이스(DB)화와 온라인 서비스가 준비 중에 있으며, 미래의 다산학 연구는 새로운 장을 열게 될 것이다. 『정본 여유당전서』에 의거한 번역연구가 이루어지면서 완역도 가능하게 될 것이고, 나아가 학제學際 간의 연구들도 활성화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본 정본사업의 성과는 다른 고전 원문 자료의 정본화를 향한 길을 터놓는 계기가 될 것이다.

사업 배경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에 대한 연구는 다산 서거 100주년(1936)을 기념하여 신조선사에서 《여유당전서》가 발간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신조본은 다양한 필사본 상태로 전해져 오던 다산의 저술을 154권 76책으로 정리한 것으로 경학·시문·정치경제·역사지리·법학·의학·음악·언어 등 광범위한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무엇보다 식민치하의 어려운 상황 하에서 민간의 노력을 모아 ‘조선 출판 역사의 금자탑’이라고 할 거질의 전서로 출간되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신조본이 발간된 이래 이 판본은 별다른 의심 없이 정약용 연구의 기본텍스트로 꾸준히 사용되어 왔다. 그동안 《여유당전서》를 저본底本으로 2,000편이 넘는 논문과 200여 편 이상의 박사학위논문, 100권이 넘는 단행본이 출판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다산학茶山學’이라는 새로운 학문영역이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현재 통용되는 신조본의 편차와 분량은 다음과 같다.
신조선사본(여유당전서)편차
신조선사본(여유당전서)편차
대분류 접수/편찬 서명 원문글자 수 총계
詩文集 1/1 ~ 7 詩集 163,229 671,469
1/8-22 文集 436,944
1/23 文獻備考刊誤 9,445
雜簒集 1/24 雅言覺非 38,881
耳談續纂
1/25 小學珠串 22,970
經集 2/1 大學公議 28,350 1,414,189
2/2 大學講義 24,325
小學枝言
心經密驗
2/3 中庸自箴 18,800
2/4 中庸講義補 43,752
2/5-6 孟子要義 73,175
2/7-16 論語古今注 292,537
2/17-19 詩經講義 89,601
2/20 詩經講義補遺 26,219
2/21 尙書古訓序例 35,478
2/22-28 尙書古訓 204,479
2/29-32 梅氏書平 142,055
2/33-36 春秋考徵 103,070
2/37-44 周易四箋 234,356
2/45-48 易學緖言 97,992
禮集 3/1-16 喪禮四箋 437,428 656,974
3/17-20 喪禮外編 108,931
3/21-22 喪儀節要 53,885
3/22 祭禮考定
3/23 嘉禮酌儀 32,824
禮疑問答
3/24 風水集議 23,906
樂集 4/1-4 樂書孤存 92,874 92,874
政法集 5/1-15 經世遺表 362,728 1,011,173
5/16-29 牧民心書 370,208
5/30-39 欽欽新書 278,237
地理集 6/1-4 疆域考 128,772 240,728
6/5-8 大東水經 111,956
醫學集 7/1-6 麻科會通 120,150 125,933
7/부 附醫零 5,783
총계 4,213,340
신조본은 다산의 저작을 시문집 및 잡찬집, 경집, 예집, 악집, 정법집, 지리집, 의학집의 총 7개 분야로 분류하여 ‘전집’의 형태로 출판되었는데, 다산 사후 100년이란 긴 세월이 흐른 뒤였다. 신조본이 지난 80년간 다산학 연구의 원문 저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편에서는 과연 이것이 다산 저작의 원형에 가까운 것인가 하는 의문과 함께, 다산 저작의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먼저 다산의 저서가 그의 생전에 출판된 것이 아니라 필사본으로 주로 유통되었기 때문에 현재 전하는 필사본들은 전사傳寫 과정에서 많은 오사誤寫와 탈자脫字가 발생했을 것이다. 당시 이미 주요한 필사본들이 해외로 유출되어 자료수집의 한계도 있었을 것이다. 편집과정에서 편수의 오류도 있으며, 근본적으로 편집 체제에 있어서도 다산이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에서 밝혔던 것과 다르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또한 다산의 저작으로 보기 어려운 내용이 수록되고, 오히려 『민보의』와 같이 명백하게 다산의 저작으로 판단되는 자료가 누락되었다. 이에 다산학회 김영호金泳鎬는 오랜 공력 끝에 누락된 자료들을 모아 《여유당전서보유》를 발간하기도 하였다. 필사 선본을 찾아 《여유당전서》를 교감하고, 국제적인 고전정리 방식인 표점을 적용하여 세계적 보편성을 갖추며, DB화를 통해 고전원문 자료를 현대화하는 것은 다산학계의 숙원사업의 하나가 되었다. 마침내 2000년대 초에 이르러 정본사업의 당위성에 대한 학계의 인식이 고조되었고 연구자들의 적극적인 호응에 힘입어 『정본 여유당전서』 발간을 위한 정본사업에 착수하게 되었다.
  • 1. 국제적 고전정리 방식인 표점을 표시하여 원문 해독을 용이하게 한다.
  • 2. 신조본과 필사 선본의 대조를 통해 신조본의 오·탈자 및 내용을 교감한다.
  • 3. 한글쓰기 체제에 따른 가로쓰기를 채택하여 현대화된 편집·출판 체제를 확립한다.
  • 4. 교감을 위한 필사 선본을 확보하기 위해 국내외 필사본을 조사·정리·연구한다.
  • 5. 《여유당전서》 미수록 저술을 조사·수집하고 진위판정을 통해 『보유』로 편입한다.
  • 6. 『정본 여유당전서』의 DB화와 웹서비스를 위한 기반을 구축한다.
  • 7. 『다산학사전』 편찬 및 『정본 여유당전서』 완역을 위한 토대를 구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