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소감

제 14회 다산학술상 : 노지현

다산학술재단으로부터 학술우수상에 제 논문이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받은 그 날, 네델란드의 라이덴에서 로테르담까지 가야했는데 기차를 잘못 타서 파리행 기차를 놓쳤습니다. 이 상을 제가 감히 받을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갈등의 순간에 저지른 어처구니 없는 실수였던 것 같습니다. 일단 수상을 결심한 이상, 이렇게 수상소감서를 쓰고 있지만 이것이 참 어려운 글임에 틀림 없습니다. 제 논문의 결점이 여러분들 앞에서 더더욱 크게 보여서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제 논문의 주제는 다산의 고문상서 작업을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고문상서 작업은 매씨서평에 주로 실려 있습니다. 2002년에 이지형 선생님이 번역하신 이 책은 제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번역본이 있더라도 이 책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산이 보았을 많은 자료와 더불어 다산의 논리적 사고방식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했습니다. 고문상서가 위서라고 비판한 작가들은 모두 지식과 논리 면에서 뛰어나지만, 다산은 늦게 태어났기 때문에 그들의 글들을 다시 재분석하면서 종합할 시간이 있었고 또 그들과 다른 독창적인 주석들도 많이 내놓았습니다. 다산학의 엄밀성이 원없이 드러난 것이 다산의 상서관련 작품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중국학의 기반이 더 탄탄하고 다산의 작업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프랑스에서, 다산의 글만을 통해서 다산을 유럽의 중국학계에 거부감없이 받아들이게끔 알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중국의 거장들과 그가 한 텍스트를 눈 앞에 두고 시공간을 초월해서 나눴을 자유롭고 열정적인 대화를 소개함으로써 그를 누구 못지 않게 멋지고 위대한 학자로 받아들이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 목적은 아직 달성되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 날이 오기까지는 아직도 결점 투성이인 논문을 절차탁마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저의 작은 열정을 믿어주시고 이렇게 상까지 주신 여러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큰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또 이 자리에 참석하진 못 하셨지만, 제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은 분들이 있습니다. 논문 쓰는 길고 긴 기간 동안 다산의 작업에 끊임없이 관심 가져주시고 격려해 주신 안 쳉 선생님과 미셀 디디에님, 제가 편하게 공부하라고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남편, 초조하게 빨리 끝내기만을 고대했던 철없던 딸, 멀리서 늦게까지 공부만 하던 동생을 안스럽게 바라보던 큰언니와 조카 세화,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만들어 주신 정해창 이사장님께 저의 따뜻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오늘 참석해 주신 여러 전공자분들께도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논문 쓰는 기간 동안 대화할 상대가 거의 없어서 많이 외로웠는데 이렇게 갑자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분들이 많이 생겨서 무척 행복합니다. 연구의 질을 높여서 즐거운 대화를 여러분들과 오랫동안 나눌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